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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대범하고 뻔뻔한 게으름을 예술로 승화시킨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by 갖고싶은예술 2023.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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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urizio Cattelan은 도발적이고 종종 논란이 되는 예술품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현대 예술가입니다. 그는 사회 규범에 도전하고 예술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설치 작품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습니다. Cattelan의 작품은 블랙 유머 감각으로 특징지어지며, 그를 예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양극화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유년시절과 대표적인 작품과 의미,  그에게 게으름이란? , 예술계에 평가와 가치에 대해 상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삶과 유년시절

    이탈리아 현대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1960년 9월 21일 이탈리아 파도바의 노동자 계급에 굉장히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였고, 어머니는 청소부로 일했습니다. 카텔란은 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엽서를 팔거나, 꽃을 배달하거나, 시장에서 짐을 나르는 등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좀 더 크고 나서는 낮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공장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이후 성인이 된 카텔란은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장례식장 직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세탁소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독학으로 디자인을 공부해 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으며, 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카텔란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카텔란에게는 선천적이고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게으름이었습니다. 카텔란은 일이 조금이라도 어렵다 느껴지거나 몸이 힘들면 바로 사표를 던졌습니다. 더 편한 일은 없을지 고민하며 직업을 자주 바꿨습니다. 그러던 중 카텔란의 눈에 들어온 직업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술가'였습니다. 예술가가 되면, 좀 더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비록 28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미술관에 가본 적 없었지만, 카텔란은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독학으로 디자인을 공부했던 것처럼,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해서, 카텔란의 2001년 작품, "무제(Untitled)"는 미술관 바닥을 뚫고 머리를 내미는 카텔란 인형을 볼 수 있습니다. 정규 미술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고 미술관에 입성한 카텔란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카텔란은 전통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선입견 없이 자유분방한 작품세계를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게으름을 딱히 숨기지 않고 담대하게 보여주며 파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마우리치오 카텔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대표작과 의미

    1."코미디언"

    코미디언은 카텔란과 그의 작품을 일반적인 대중에게 모두 인식시킨 작품이었습니다. 덕테이프로 벽에 붙인 바나나 하나로 미술제도의 한가운데에서 작품의 가치에 대한 논쟁을 일으킨 작품입니다. 커다란 벽에 바나나 하나가 덩그러니 붙어 있는 이 작품은 지난 2019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 처음 등장한 이래 늘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바나나를 덕 테이프로 단순히 벽에 붙인 이 작품이 12만 달러에 팔린 것부터 한 작가가 퍼포먼스로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린 일, 그 후 신선한 새 바나나로 교체된 사실과 몰려든 인파로 인해 결국 갤러리가 작품을 내린 선택까지, 시끄러운 이슈를 유발했습니다. 이처럼 카텔란은 기존 미술 제도의 문제점을 회피하는 대신 한가운데 뛰어들어 논쟁의 장을 만들고 그 모순을 드러냅니다.

    코미디언
    코미디언

    2. 무제(Untitled)

    카텔란은 작품에 개인적 서사에 기반한 강력한 감정을 담아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미술관 바닥을 뚫고 엉뚱한 곳으로 나와버린 듯한 카텔란의 얼굴을 담은 ‘무제’는 영웅적 예술가를 기대하는 기존 미술계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외부인 같은 카텔란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무제
    무제

    3. 우리(WE)

    전시장 한복판에 놓인 작품 ‘우리’를 보면, 침대 위에 죽은 듯 나란히 누운 두 남성이 카텔란과 무척 닮았습니다. 검은 양복과 창백한 표정은 장례식을 연상시키기도 하죠. 해당 작품은 카텔란 작업의 오랜 모티브인 죽음에 대한 복합적인 심상을 이끌어냅니다.

    우리
    우리

    4. 아홉 번째 시간

    붉은 카펫 위로 작품 제작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가 운석에 맞아 쓰러져 있는 모습을 표현한 이 강렬한 작품은 카텔란이 권위를 다루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1999년 쿤스트할레 바젤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로 전시된 환경에 따라 다양한 반향을 일으킨 이 작품은 특정 종교 및 맥락을 초월해 권위와 억압에 대한 열띤 토론을 주선합니다.

    아홈 번째 시간
    아홈 번째 시간

    5. 모두

    바닥에 나란히 놓인 9개의 조각으로 구성된 작품 ‘모두’를 바라보면 누구나 천으로 덮은 시신을 연상할 것입니다. 나아가 여러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유추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미디어를 통해 참사의 현장이나 죽음의 재현을 간접적으로 마주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평한 스크린을 통해 반복적으로 송출되는 전 세계의 사건 사고 중 한 장면을 펼쳐놓은 듯한 이 작품은 기념비에 자주 쓰이는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들었습니다. 9개의 얼굴 없는 대리석 조각은 익명의 죽음에 대한 기념비로, 관람객 각자에게 깊이 새겨진 비극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두
    모두

    6. 그

    이 작품을 멀리서 보면 교복을 단정히 입은 어린 학생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거나 반성하는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얼굴을 확인해 보면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아돌프 히틀러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생전에 참회하지 않았지만, 카텔란은 단정한 옷을 입고 공손히 무릎 꿇은 히틀러의 모습을 통해 잔존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열하게 고민하도록 합니다.

    그

     

    마우리치오 카텔란 |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 리움미술관

    게으름이 고개를 내밀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게으름이 고개를 내민 건, 1989년 진행된 첫 개인전에서였습니다. 보통 작가로서 첫 개인전을 열면 영혼을 갈아 작품을 선정하고, 전시하고, 홍보하기 마련인데, 카텔란은 전시가 진행되는 공간에 작은 표지판을 매달아 둔 것이 전부였습니다. 표지판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죠."나는 곧 돌아오리라 Torno Subito"

    관람객들은 무언가 일이 벌어지길 기대했습니다. 작가가 돌아와 비어있는 벽에 작품을 걸거나, 무언가 행위예술 같은 것을 선보이거나 할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 표지판은 전시기간 내내 붙어있었고, 작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카텔란은 '첫 개인전이라는 공포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후 1992년, 카텔란은 또 다른 게으른 작가를 찾아 나섭니다. 오블로모프 재단 Oblomov Foundation을 세워, 1년 동안 일하지 않은 작가에게 상금을 주는 이벤트를 기획했습니다. 스폰서를 구해 상금도 마련하고, 대대적인 홍보도 진행했지만, 그 누구도 이 이벤트에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1993년, 카텔란은 또 한 번 자신의 전시에 '노쇼'합니다. 당시 카텔란은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되어 전시 공간을 배정받았는데, 베니스 비엔날레는 미술계 올림픽이라 불릴 만큼, 예술가들에게는 꿈의 전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카텔란은 이 공간을 이탈리아 향수 회사의 광고 에이전트에 임대했습니다. 작품이 있어야 할 전시 공간은 순식간에 향수 체험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카텔란은 이 공간 앞에 "일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 (Working is a bad job)"이라는 캡션을 달아둡니다. 관객은 당황했고, 비난여론이 일었습니다. 이에 카텔란은 이런 변명을 남깁니다.


    "비엔날레에서
    제공한 그 엄청난 공간을 채울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랬다. 다행히 큐레이터가 내 아이디어를 존중해 줘서 이처
    럼 멍청한 짓을 할 수 있었다."


    작가로서 프로페셔널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변명이었습니다. 공간을 채우기엔 너무 게으른 작가임을 미술계에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미술계에서는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었습니다. 

    사건이 터지다!

    1996년,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현대 미술계에게도 외면받는 사건이 생깁니다. 네덜란드에서 진행되는 전시회에 본인 작품이 아닌, 다른 전시장 작품을 통째로 훔쳐온 것이었습니다. 카텔란은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 설명 프린트, 테이블 등 공간에 있는 모든 걸 훔쳐옵니다. 그리고 작품 제목을 "또 다른 빌어먹을 레디메이드 (Another Fucking Readymade)"라 이름 붙였습니다. 다음날, 작품을 도난당한 갤러리는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의 갤러리에서 도난당한 작품이 버젓이 전시 중인 걸 발견했습니다. 작품을 훔친 카텔란은



    "전시 준비 기간이 너무 짧고, 내가 너무 게을러서 제대로 준비를 못했기에 벌인 행동이었다"라고 변명했습니다.

     

    카텔란을 섭외했던 갤러리에서는 "역발상의 레드 메이드 논리를 실행한 퍼포먼스였다"며 변호했지만, 미술계에서는 이제 카텔란의 기행에 질린 듯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카텔란은 더 이상 후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카텔란은 '게으른 예술가'라는 아이덴티티를 강조하며 수많은 기행을 이어갔습니다. 때로는 작가로서의 책임감이 없어 보이는 행동도 있었지만, 예술가의 크리에이티브가 곧 작품이 되는 현대미술에서 이런 작품은 기발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굉장히 위험한 행보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까지도 예상해야 합니다. 평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작품 소제는 예술ㆍ사회ㆍ정치 전반적 가치 흔드는 블랙유머를 기반으로 합니다. 변곡점이 많은 그의 인생사는 전형적인 미술가 유형을 벗어나 스스로를 ‘미술계의 침입자’로 정체화하고, 제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카텔란은 일상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차용하면서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넘나들어 ‘뒤샹의 후계자’로도 평가받기도 하지만, 과대 포장된 또 하나의 줄리앙 슈나벨 Julian Schnabel이라고 평가 절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장 게으르지만 가장 대범하고, 창의적인 본인의 특성을 살린 카텔란. 덕분에 그는 가장 부유한 작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엔 약간의 뻔뻔함과 당당함도 필요합니다. 카텔란은 본인 작품에 대해 비난하는 여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스캔들이 만연한 세상에서 내 작품이 스캔들
    이라 느낀다면, 당신은 현실 감각이 없는 것이다."

    바쁜 체제에 안주해 현실 속 사유의 순간을 잊고 지내는 우리에게 카텔란은 스캔들만큼 파격적인 작품을 자꾸 쏟아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예술이 주는 위트, 발상이 전환되는 순간을 선사합니다. '마우리치오 마켓'이란 말에 말들이 많습니다. 예술의 진정성을 덮고 있는 낡은 형식적 틀에 도전하는 혁신가들의 방식이란 것이, 보기에 따라서는 자기가 옳다고 억지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건은 얼마나 미술사에 깊이 있게 오랫동안 관여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가치

    대범한 게으름 속, 깊숙한 곳에서 드러나는 예술성 정규 교육도 받지 않고, 게으름을 주제로 내세우며 기행을 이어가는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카텔란은 미술계에서 미움을 받을 수도 있는 존재였지만, 오늘날 갤러리, 미술관, 대형 기획전, 아트페어, 경매회사 등 미술계 곳곳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수도 없이 출전했으며, 미국 뉴욕의 MoMA, 구겐하임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진행했습니다. 카텔란의 작품이 가진 상업적, 예술적 가치를 그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카텔란이 예술가로서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은 2010년 작 "L.O.V.E"입니다. 11미터 높이의 거대한 손 모양의 조각상입니다. 이 작품은 밀라노 증권거래소와 마주한 아파리 광장에 세워져 있는데, 작품은 감상자가 어떤 신분이냐에 따라 유쾌한 반란이 되기도, 기분 나쁜 비난이 되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광장에 세워져 있지만, 금융계 거물이 모이는 증권거래소 앞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들은 이 작품이 자신들을 향한 사회적 지탄이라고 느꼈습니다. 가운데 손가락을 당당하게 치켜든 모습이 불경스러운 몸짓이라고 여겼습니다.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호화로운 사무실을 차지하고 있던 금융계 임원들은 볼썽사나운 조형물이 안 보이는 곳으로 사무실을 옮겨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광장을 거니는 평범한 관객들은 작품을 보고 실소를 터트렸습니다. 이 조각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어 손가락 욕을 날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 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들은 잘려나간 모습이죠. 작품을 멀리서, 혹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금융계 거물들은 언뜻 손가락 욕처럼 보이는 이 작품을 보고 불쾌감을 표했지만, 작품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광장의 관객들은 작품의 디테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사회적 지탄이라 지레짐작하고 욕한 것입니다. 카텔란은 이 작품을 통해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전복시킬 의도는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본인의 예술을 통해 현재의 체제를 새롭게 바꿀 수 있으리라고 믿을 만큼 낙관적이지도 않으며, 세계가 전복되면 좋은 세상이 도래하리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가 이미 그 세계에 속해있어서 이를 잘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카텔란의 작품은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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